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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성수의이슬람 바로알기-까다피 이후의 리비아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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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1-09-04 00: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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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의 이슬람 바로알기

 

 

까다피 이후의 리비아

 

북아프리카의 맹주로 군림해 왔던 까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반군에 함락되면서 리비아 정국은 이라크와 같이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트리폴리가 함락되고 알 아지지야 요새가 급격하게 함락되는 상황을 접하던 일반인들은 현 사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7개월 이상 지속되어오면서 장기적 상황으로 가고 있던 리비아 사태가 갑자기 급격한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즉 리비아에서 갑자기 반군들이 승기를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정치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간파할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중심이 된 나토군은 리비아 반군에게 엄청난 군사지원을 했다. 리비아 사태가 까다피군과 반군사이에서 장기적인 상황으로 돌입하면서 프랑스 등은 유엔 결의내용을 초과하는 무기와 지상병력까지 투입한 것이다.

또한 미국이 리비아 반군에 지원한 금액이 우리 돈으로 1조원, 영국과 프랑스가 각 각 5천억원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나투군의 공습은 까다피 군대를 와해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엄청난 공습을 트리폴리에 가함으로써 트리폴리의 까다피 군대는 거의 궤멸된 것이다. 만일 반군에 대한 나토의 지원이 이렇게 막강하지 않았다면 리비아에서 반군은 오히려 까다피 군에 의해 거의 축출되었을 것이다.

 

리비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반군들이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는 리비아에서 까다피와 나토군의 장기적인 전쟁은 나토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토군은 8월말까지를 기한으로 잡았다. 즉 나토군은 9월을 넘기지 않고 까다피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유럽경제위기로 영국에서는 재정 감축의 여파로 인해 리비아와의 전쟁에서 9월로 넘어가는 장기전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초기 반군은 리비아 정부군이 버린 구식 총 몇 자루와 몇 명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잡군 수준이었다. 이러한 반군이 그 근거지인 벵가지에서 조차 궤멸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토는 지속적으로 반군을 지원했다.

또한 여기에는 리비아 공격의 중심이 되었던 사르코지의 국내 정치적 상황 타개 목적이 다분히 존재했다. 과거 사르코지와 까다피는 매우 돈독한 관계였고 지난 프랑스 대선 때 까다피는 대선자금까지 사르코지에게 빌려 준 바 있다. 그런데 까다피가 대선자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함으로써 사르코지의 정치적 입지는 국내에서 매우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꿈꾸는 사르코지는 너무나 낮은 자신의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리비아의 사태는 사르코지에게 단비가 된 것이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리비아의 질 높은 저유황 석유에 대한 갈망이 무엇보다도 심했다. 유럽이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북아프리카 질 좋은 리비아산 원유는 너무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저유황 원유는 다른 지역 석유와는 달리 유황성분이 적어 탈황 설비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다른 지역의 석유를 더 많이 수입한다면 탈황 설비를 다시 해야하는 이중고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이미 유럽 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매장량 440억 배럴 세계 8위의 매장량을 가진 리비아 석유 쟁탈전이 시작되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따라서 리비아 사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발생한 시민혁명과 맞물려 일어나긴 했지만 서방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독재에 대항한 시민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행했던 것처럼 석유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권력투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향후 리비아가 쉽게 안정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140여개의 부족집단이 각각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것이고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는 과도 국가위원회(NTC)는 그야말로 과도한 권력투쟁과 까다피 지지세력 및 친 까다피 부족들과도 전쟁을 수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까다피 정부의 몰락으로 결국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의 제2의 이라크가 된 것이다. <이성수, 국제지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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